일러스트레이션 브랜딩에서의 포용성(Inclusiveness)

일러스트레이션 브랜딩에서의 포용성(Inclusiveness)

브랜드, 혹은 그것을 만들고 실행한다는 의미에서의 브랜딩은 끊임 없이 진화하는 개념입니다. 그것을 단순히 로고 스타일을 다듬는 일이거나, 잘 만들어진 광고로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는 일 정도로 치부하지 않는다면, 항상 그 본질은 제품 가치(Product Value)에서 찾습니다. 제품 가치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니 브랜딩도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특히, 최근 많은 제품 디자인이 물리적 공산품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면서 브랜딩 또한 그 한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현상 중에 하나가 일러스트 브랜딩(Illustration Branding)입니다. (*Illustration은 편의상 '일러스트'로 통일합니다.)

Image Source: Ryan Putnam on Dribbble

 

스마트폰의 앱을 사용하다보면 사용법을 알려주는 귀엽고 간단한 그림들로 이루어진 온보딩(Onboarding) 화면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테크 스타트업들의 랜딩 페이지를 방문해보면, 간단한 일러스트로 회사나 제품을 소개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로고의 심볼로 일러스트 캐릭터를 사용하기도 하고, 영상 컨텐츠에는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며, 키보드 이모지/이모티콘은 이제 텍스트를 뛰어넘는 일상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실제 사례를 한번 볼까요? Dropbox는 클라우드 파일 공유 시스템을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하는 단 하나의 일러스트로 초기 투자까지 유치하는 MVP(Minimum Viable Product) 사례로 아주 유명합니다. Apple, Facebook, Google과 같이 OS 레벨에서 메신저를 다루는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좋은 이모티콘과 이모지를 만들어, 사용자들이 제품에 대해 좀더 인간적으로 편안한 감정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Kakao나 Line의 캐릭터는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Slack, Mailchimp, Waze 같은 성공적인 테크 회사들 역시, 사용자들에게는 제품보다 이들 브랜드 속에 녹인 일러스트 요소나 캐릭터가 더 익숙할 정도입니다.

Image Source: Harry's Magazine

Image Source: Harry's Magazine

 

물론 아트 장르로서의 일러스트와 브랜딩에서의 일러스트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작품으로 소비하는 일러스트는 좀 더 인간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재미 있으며, 어떻게 튈지 모를 비정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러스트 브랜딩은 브랜드 디자인 과정으로서, 한 브랜드나 제품이 가진 일관된 가치를 수많은 사용자들과 소통하는 일종의 언어 시스템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좀 더 정돈된 결과물로 마감되고, 정형성을 갖습니다. 소위 그림체 하나 하나에 브랜드가 가진 철학과 제품의 핵심 가치가 녹아드는 것입니다. 물론 일러스트가 가진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특징이 배제된 채 브랜딩에 활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러스트의 이러한 장점이 브랜딩으로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기 때문에 최근 기업들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만드는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 역시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본 글은 이렇게 점증하는 일러스트 브랜딩을 집대성, 정리하기 보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일러스트 디자이너인 Alice Lee가 Wordpress의 Automattic 디자인 팀과 함께 수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해당 원문은 Inclusiveness in illustration, WORDPRESS.COM: DESIGNING AN INCLUSIVE ILLUSTRATION BRAND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이를 요약, 정리하면서 곳곳에 필자의 견해를 덧붙인 결과입니다.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Alice Lee의 워드프레스(Wordpress) 일러스트 브랜딩 프로젝트는 Automattic이 가진 'Democratize Publishing'라는 브랜드의 미션을 구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단순히 이 미션 문구를 문자 그대로 웹과 프린트물에서 소개하고 소비자의 이해를 돕도록 설명하는 그림을 만든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전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속에 Democratize Publishing 정신 자체를 일러스트 속에 담아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많은 테크  기업들의 일러스트를 보면, 백인 남성이 힙한 커피숍에 앉아 라떼를 마시며 멋있게 랩탑으로 일을 하고 있는 이미지가 주를 이룹니다. 인종적으로, 사회경제학적 배경으로, 라이프트타일적으로 굉장히 왜곡된 이미지들입니다. 이런 편향된 일러스트 속에 어떻게 하면 '포용성(Inclusiveness)'을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을지를 답을 찾았던 과정이 바로 본 프로젝트였습니다.

많은 브랜딩 디자인 과정이 그렇듯, 이 프로젝트도 브랜드의 스타일이나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러스트 브랜딩 시스템(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이를 제품이나 마케팅 현장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일러스트 작업물 60+개를 만드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래는 이 프로젝트의 몇개의 핵심만 추려서 요약해보았습니다.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1. 인간의 체형과 피부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다양하다.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캐릭터 디자인은 일러스트 브랜딩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캐릭터 그림들은 아주 잘 빠진 체형을 가진 백인을 상정해두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브랜드를 사용하거나,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체형과 피부색은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캐릭터의 이상적인 모습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한 브랜드가 그런 전형적인 캐릭터만을 사용하고 있다면, 자신의 사용자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Alice는 포용적인 캐릭터 세트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체형을 추상적 모형으로 만들어 시작하였습니다. 사각형, 둥글둥글한 형태, 마른 타입 등 원형을 정해두고, 여기에 다양한 피부색, 얼굴 형태, 머리 스타일, 의상 등을 추가해 캐릭터를 완성하였습니다. 특히 피부색의 경우엔, 기본 백인의 흰색에서 출발하기보다 브랜드에 어울리는 컬러 팔레트를 만드는 작업으로 피부톤을 결정하였습니다.

 

2. 사용자들이 모두 실리콘 밸리의 백인 남성은 아니다.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젠더 역시 포용성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단순함을 강조하는 일러스트에서는 이분법적인 젠더 인식이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아주 여성스럽거나 아주 남성스러움을 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Alice와 Wordpress 팀은 남성 같지도 여성 같지도 않은 혹은 중립적인 젠더를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캐릭터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사용자가 모두 테크 기업에 종사하거나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듯한 편견된 직업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Alice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 직업 배경을 보충 설명하기 위하여 가늘고 연하면서 추상화된 라인 스트로크를 캐릭터 배경에 추가하고, 폭넓은 연배나 의상, 라이프스타일을 캐릭터 속에 입히는 작업을 추가하였습니다.

 

3. 사용자 리서치는 일러스트 브랜딩에서 유효하다.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디자이너의 편견은 많은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 가장 큰 적입니다. 성공적인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머리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유효한 경험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포용성을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두고 이를 표현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던 이 작업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선입견과 가정은 더욱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브랜딩 작업 과정에서 진행된 Automattic 내부 직원과 실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리서치 과정 덕분이었습니다. 실제로 Alice는 사용자 리서치를 통해 자신의 편견보다 더 다양한 사용자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일러스트 속에 녹일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4. 만화 같이 재밌는 인간적인 면과 비즈니스로서 정제된 마감 사이에서 균형 잡기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Image Source: Alice Lee's Website

일러스트 하면 대게 만화나 낙서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림체가 덜 정돈 되고, 기발하며, 과정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를 주게 됩니다. 반면, 브랜딩에서의 그래픽 디자인 과정은 일관된 톤&매너로 좀 더 정제되게 마감하여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브랜딩에서 일러스트를 사용하는데 사용자가 다가가기 싫고, 너무 거만하게 보이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바로 이 인간적인 장점과 정제된 마감 사이의 균형 잡힌 그림체의 개발은 이 일러스트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Alice는 이를 위해 기하학적인 단순화된 도형 그림과 좀 더 인간적인 라인 드로잉을 적절히 배합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였습니다. 색을 채운 도형들의 구성에 라인을 디테일로 추가함으로서, 딱딱하지만 전문적으로 보이는 일러스트에 인간적인 재미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Alice는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이를 브랜딩에 통합하는 디자이너로서 많은 테크 기업들과 일러스트레이터들 사이에 포용성(Inclusiveness)의 가치가 폭넓게 적용되기를 희망한다며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단순화한 그림이 재미있고 사용하기에 편리하다고만 해서 일러스트가 널리 사용된다면, 일러스트 브랜딩이 사용자들에게 사랑 받는 브랜딩 툴이 되기 어렵습니다. 더 포용적이고 다양한 인간적인 면들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고, 이에 뜻을 같이 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늘어난다면, 일러스트 브랜딩은 잠시 핫한 유행이 아닌, 더 전문적이고 지속될 수 있는 브랜딩 도구로 각광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Blue Bottle Coffee의 일러스트 로고는 이미 좋은 브랜딩 사례로 주목 받고 있으며, 이커머스 사이트와 굿즈 패키징 디자인에는 일러스트 그래픽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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